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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여름 장아찌

TASTE OF KOREA#01

세 가지 여름 장아찌

집밥이 그리운 이유는 그 소박한 맛을 그대로 따라 하기가 영 어렵기 때문 아닐까? 손맛 정겨운 이에게 그 비법을 물어보면 별거 없다 하기 마련인데, 이내 보따리 풀듯 늘어놓는 이야기에는 가족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과 계절을 누리는 지혜가 골고루 버무려져 있다.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오래도록 기억되고 기록되어야 할 맛이다. 창밖에 초록빛이 드리우면 여름 햇살의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채소가 장에 나온다. 전주에 사는 배현순 씨는 이걸 잔뜩 사다가 간장과 설탕 따위에 절여 장아찌를 만든다. 개운한 이 여름철 밑반찬은 무더위에 지친 가족의 입맛을 개운하게 달래줄 묘약이다. 제철 매실과 오이, 고추로 아삭한 장아찌 만드는 법을 자세히 들어본다.

이미지 1 - 배현순 씨의 이야기
전주 효자동에 사는 배현순 씨는 식당을 운영했을 만큼 빼어난 요리 솜씨를 자랑하지만 의외로 결혼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부엌살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음식을 참 잘한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것이 그 원천이 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맛본 어머니의 손맛이 미뢰와 손끝에 차곡차곡 기록된 덕분일까, 그가 차려내는 음식에는 자꾸만 생각나는 그리움이 있고,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따스함이 있다.


이미지 2 - [향긋한 매실장아찌]
6월 초쯤 되면 매실이 나와요. 장아찌는 청매실로 만들어요. 황매실은 향은 좋은데 좀 물컹해. 알이 크고 싱싱한 매실을 골라요. 짱짱한 걸 골라야 나중에 씨 뺄 때도 편하고 아삭하니까. 청매실 4kg 기준으로 만들어볼게요. 우선 깨끗하게 잘 씻어요. 베이킹소다나 식초나 소주로 씻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냥 큰 다라이에 넣고 물 가득 부어서 찌꺼기 뜨는 거 버리고, 한 알씩 잘 돌려가면서 씻고 상처 난 건 버려요. 4kg 하면 버리는게 10개쯤 나오나. 채반에서 물기를 말리고 남은 물기는 면보로 잘 닦아요. 그다음에 이쑤시개 같은 걸로 꼭지를 쏙 따고. 안 그럼 쓴맛이 나거든. 편평한 곳에서 매실을 꼭지를 위로 가게 한 손으로 잡고, 망치나 방망이 같은 걸로 위를 탁 쳐요. 이게 몇 번 해보면 감이 딱 와. 너무 세게 치면 다 으스러져버리니까 힘 조절을 잘해서. 갈라진 매실에서 씨를 쏙 빼요. 씨에 과육이 너무 많이 붙어 있으면 칼로 잘 도려내고. 씨를 뺀 매실에 설탕을 1.5kg에서 2kg 넣고 잘 섞어요. 나는 자일로스황설탕이랑 원당을 섞어서 써요. 비율은 3 대 1 정도. 하룻밤 실온에 두면 설탕이 녹으면서 매실에서 물이 쫙 나와요. 그럼 그 물을 쏙 따라서 버리고, 거기에 올리고당을 1.5kg 넣어요. 그럼 설탕보다 덜 달고 매실이 쫄깃쫄깃해. 거기에 설탕을 1kg 넣어서 잘 섞고 다 녹게끔 1시간쯤 기다려요. 그리고 열탕소독한 유리병에 담는데, 그 전에 나는 매실에 깻잎을 섞어요. 깨끗이 씻어서 물기 바짝 말린 깻잎을 서너 장쯤 적당히 찢어서. 그리고 열탕소독한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고 맨 위에 깻잎을 잘 덮어줘요. 깻잎이 살균을 해준다더니 이렇게 하면 정말 위에 곰팡이도 안 피고 향긋하고 맛있어. 나는 뚜껑을 바로 안 닫는 대신 한지로 덮고 고무줄로 두른 다음에 뚜껑을 반쯤 걸쳐요. 누가 국산 한지를 이만큼 갖다 줘서 그걸 써요. 플라스틱 통 같은 데 담아 뚜껑 꼭 닫고 실온에 두면 나중에 열 때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알코올 냄새도 나고. 매실이 숨 쉴 수 있게 한지로 잘 덮어서 열흘을 실온에 뒀다가 뚜껑을 꼭 닫아서 냉장고에 두고 두 달쯤 후에 먹어요. 근데 한 달만 지나도 맛있더라고, 나는.
매실장아찌는 아삭하고 꼬들한 맛을 즐기는 게 좋아서 나는 별다른 양념 안 하고 그냥 먹어요. 고추장으로 양념한 거 먹고 싶으면 매실청 담그고 나서 매실이 나오잖아. 그걸 버리지 말고 씨 빼서 고추장에 박아뒀다가 꺼내 먹어봐요. 파 좀 썰어 넣고 기름 치고 마늘이랑 깨도 좀 뿌려서. 아무래도 장아찌 매실보다는 좀 물컹한데 그것도 밥반찬으로 좋아요.

이미지 3 - [간장에 절인 고추장아찌]
고추장아찌는 껍질이 얇은 걸로 해야 맛있더라고요. 두껍고 작달막한 고추는 장아찌로 담그면 질기고 청양고추는 너무 맵고. 그래서 나는 아삭이고추나 오이고추 같은 걸 써요. 초록 빛깔 곱고 길쭉한 걸로 잘 골라서 꼭지를 조금만 남기고 잘라요. 싹뚝 다 잘라버리면 모양이 안 이뻐. 그리고 고추를 서너 번 콕콕 찔러서 구멍을 내요. 나는 포크보다는 꼭지를 뾰족하게 잘라서 그걸로 찔러요. 그 속에 양념 잘 배라고. 장아찌물은 일곱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다 구하기 쉬운 거야. 간장, 식초, 설탕, 사이다, 멸치액젓, 소주, 물 다 같은 비율로 넣어요. 고추는 오이처럼 수분이 있는 게 아니라 물이 좀 들어가. 간장은 몽고진간장 쓰고 설탕은 백설탕 써요. 고추랑 장아찌물 양을 모르겠으면 우선 밥그릇으로 해보고, 모자라면 좀 작은 그릇에 또 일곱 번 넣어보고. 비율만 맞으면 돼. 이 장아찌물에 고추를 폭 담그는데, 누름독 같은 데다 담아서 고추가 계속 잠겨 있어야 돼. 그럼 1년은 쭉 두고 먹을 수 있지. 실온에 사흘쯤 뒀다가 냉장고에 넣어요. 여름엔 더우니까 하루 이틀만 놔도 되고. 여름에 입맛 없으면 국수 말아 먹잖아. 그때 하나씩 꺼내 먹어도 좋고. 지겨우면 무쳐 먹어도 맛있지. 고춧가루, 마늘, 통깨, 참기름, 파, 그리고 나는 달달한 게 좋아서 쌀엿을 좀 넣어요. 그럼 빤딱거리고 먹음직스럽거든. 이 레시피를 여기저기 알려줬는데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고. 우리 애들도 어릴 때 잘 먹었는데 일곱 살 난 우리 손녀도 고추장아찌 참 좋아해. 입맛은 참 신기하다니까.

이미지 4 - [꼬들꼬들한 오이장아찌]
오이로 장아찌 담글 때는 백오이를 써요. 얼마 전에 농협 가니까 피클 담그라고 50개를 3만5000원에 팔더라고. 굵은소금으로 오돌토돌한 표면을 잘 씻고 물기를 말려요. 꼭지를 따거나 다듬지 않고 그대로 써야 무르지 않고 꼬들꼬들 맛있어. 오이 50개면 식초 150ml, 설탕 1.5kg, 굵은소금 종이컵으로 5컵, 소주 한 병. 설탕은 빛깔 예쁘라고 백설탕 쓰고 식초는 양조식초나 현미식초, 2배 식초는 안 돼. 사실 이게 내 비법인데. 나는 10년 된 굵은소금 써요. 곰소 바닷가 가서 소금을 몇 부대 사 왔는데 그걸 부대에 담아 베란다에 두면 바닥에 물이 흥건해. 옛날에 시골에서 소금을 큰 항아리에 담아 오래 두면 단지 밑에 물이 흥건한 것처럼. 소금 간수가 쪽 빠지면서 알갱이가 날아갈 것처럼 파스락거리는데 그 소금이 진짜야. 그걸로 김치 담그면 쓰지도 않고 맛있어.
오이를 크고 넓은 다라이에 펼쳐놓고 이 장아찌물을 잘 섞어서 부어요. 처음엔 아마 물이 좀 적은 듯할 거야. 2시간쯤 두면 설탕이랑 소금이 녹고 오이에서도 물이 나와 자박자박해져요. 그럼 한 번 뒤집어주고,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면 누름독에 차곡차곡 담아요. 오이가 둥둥 뜨지 않고 물에 폭 잠겨야 돼. 그래야 1년쯤 두고 먹을 수 있어. 열흘쯤 지나면 오이가 노랗게 색이 변해요. 그럼 먹어도 돼. 먹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이걸 아주 얇게 썰어서 소쿠리에 올려놓고 랩을 덮어 위에 뭘 좀 눌러둬요. 그럼 물이 쪽 빠지는데 아주 꼬들꼬들해. 소금을 많이 넣은 게 아니라 짜지도 않아. 여기에 마늘, 파, 참기름 한 방울 넣고 무쳐 먹어봐. 진짜 맛있어. 우리 며느리가 좋아하고 손녀도 좋아해. 이걸로 단무지 대신 김밥 싸 먹으면 개운하고 맛있어. 5월 되면 오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미리 담가두고 여름에 먹으면 정말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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